초기불교의 의의와 현대에서 의미
초기불교라고 하는 것은 붓다와 그 직제자들에 의해서 주도된 불교를 우리가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초기불교가 형성된 지 약 250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따라서 장구한 세월이 흐른 만큼 초기불교의 유효성에 관한 의문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초기불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직면해 있는 사회적 현실과 개개인의 어떤 실존적 상황들을 고려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국 출신의 철학자 한병철이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피로사회'라는 저작을 통해서 현대사회의 성과주의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긍정성이라고 하는 덕목은 거의 모든 삶의 지평에서 급속하게 부정성을 해체해 가고 있습니다. 긍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금지와 강제의 철폐, 억압의 해체, 타자에 대한 관용의 확대를 이끌어내고 우리 개개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긍정의 힘이 지나쳐서 초래된 과잉 긍정성이 부정의 힘을 상실한 수동적 존재만을 양상 할 뿐이라는 점에 있다고 한병철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21세기 현대인의 피곤에 지친 자화상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지닌 정신의 특별한 능력은 부정을 혹은 부정성 고통을 감내해 낼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정신은 타자를 대면할 때 깨어나며 타자의 부정성과 마주함으로써 스스로의 생명력을 발하게 됩니다. 그런데 긍정의 힘에 매몰된 상태에서는 무언가를 멈출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바로 이것이 현대사회의 병리적 특징인 과잉 가동, 과잉 생산, 과잉 커뮤니케이션을 초래하게 된다고 한병철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잉된 긍정성 속에서 개개인의 삶은 치명적인 활동 과잉과 피로 그리고 소진의 상태로 내몰린다고 이야기합니다.
현대 질병과 불교 전통의 참선
21세기 초의 병리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우울증이라든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모두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병철은 불교 전통의 참선에 주목을 합니다.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것들에게서 스스로를 해방하려는 시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위, 다시 말해서 하지 않음이라고 하는 부정성으로서의 공에 도달하려는 시도로 그렇게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한병철에 따르면 참선은 긍정성에 순응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능동적 과정이며 자기 안에서 어떤 주권적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연습 혹은 그 중심이 되고자 하는 연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닐 수 있는 현대적 의의와 관련해서는 최근 크게 유행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또한 참고할 만합니다. 이 책은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생물학 등의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연구 결과물로서 전 세계적인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현생 인류의 성공 배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 들어갑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불교를 다루는 대목은 비록 전체 분량을 고려할 때 많지는 않지만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불교 이외의 대다수 종교와 철학에서도 내면의 행복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또한 이것은 서구의 뉴에이지 문화라든가 현대 생물학자들의 일치된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이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불교 역시 내면의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유발 하라리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붓다의 심원한 통찰은 따로 있으며 바로 이점에서 대다수 다른 견해들은 붓다 가르침과 거의 반대 위치에 있다고 언급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붓다가 권하는 것은 외적 성취의 추구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행복에 대한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인 느낌이나 감정과는 무관하다는 것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쾌락의 총량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온 인류의 행복 역사 전체가 오도된 것일 수 있다고 비판을 합니다. 쾌락이라고 하는 주관적인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우리는 더 많은 집착을 하게 되고 그러한 집착과 더불어서 내면의 괴로움은 더욱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그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감각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 어떠한 감각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서 얻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그때에만 진정한 평화가 주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점을 분명히 밝힌 붓다의 가르침은 인류 역사상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참다운 평화와 행복의 비전을 열었다고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병철과 유발 하라리의 사례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그것을 대처해나가는 과정에서 불교의 역할과 기여를 생각해보게 한다는 그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교적 대안과 현대에서 의미
불교적 대안이 21세기 사회의 문제 해결방안의 하나로서 거론된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불교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오늘날 붓다의 가르침은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치유책으로써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서구권에 전달된 불교 명상은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포장되어 한국이나 일본 등의 동양권에 역수입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09년도에 한국을 방한한 하버드 의과대 크리스토퍼 거머 교수에 따르면 불교 명상은 그 어떤 치료방법보다도 불안이라든가 우울증, 공황장애 등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으며 가장 현대적이고 두드러진 형태의 행동치료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저명한 심리치료 잡지인 '사이코 세러피 네트워크'에 따르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심리치료사 중 40%가 넘는 사람들이 불교 명상을 자신들이 선호하는 치료 경향으로 밝힌 적이 있습니다.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간명하면서도 구체적입니다. 어느 불교에서보다도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괴로움의 대처 방안을 제시합니다. '대기 설법', 다시 말해서 그릇에 따라서 가르침을 펼친다. 혹은 '임기응변', 그릇에 따라서 변화한다고 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각기 다르게 나타난 여러 지역 불교에 대해서 그 원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불교인뿐만이 아니라 일반 현대인에 대해서도 붓다의 가르침이 지닐 수 있는 의의는 오로지 괴로움으로부터의 구제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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