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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와 제식주의

초기불교와 제식주의

초기불교와 제식주의
초기불교와 제식주의

초기불교 당시 유행했던 사상적 경향의 하나로서 제식주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식주의란 제사에 대해서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형성된 어떤 형이상학적 경향을 가리킵니다. 특히 제식주의를 주도해 나갔던 당시 지배적인 종교적 경향으로는 바라문교라고 하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이 바라문교에서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제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어떠한 효력을 가져온다며 믿고 또 가르쳤습니다. 그들에게서 제사는 미래의 삶에서 원하는 열매를 싹트게 하는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바라문교의 성전인 『샤따빠타 브라흐마나(Śatapatha Brāhmaṇa)』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타납니다. 인간은 물론 신까지도 제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모든 존재는 제사에 의해서 현재의 위치를 얻는다는 구절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곧 제사 행위를 통해서 미래의 삶이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관념을 집약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라고 하는 것은 원래 신에 대한 혹은 초월적 인격자에 대한 귀의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박한 제사 의례가 제식주의로 발전해나가면서 나타나는 뚜렷한 경향성이 있습니다. '제사만 잘 지내면 거기에 맞는 미래의 어떤 결과가 따라온다. ' 다시 말해서 소박한 형태의 제사 의례에서는 어디까지나 인간은 신의 하위에 위치해있고 그 길흉화복을 베풀어주는 어떤 신적 혹은 초월적 존재는 인간의 위에 있었습니다.

제식주의

반면에 제식주의로 넘어오게 되면 제사만 잘 지내면 신이 자율적인 의지를 통해서 인간을 지배 하는 게 아니라, 제사 자체로서 인간의 길흉화복이 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다는 사고를 가져오게 됩니다. 제사 의례가 제식주의로 발전하게 되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제사 행위를 통해서 신을 지배할 수 있다.'라는 관념으로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제식주의에서는 제사 의례의 대상이 되는 신이 오히려 제사의 수단으로 그 위치가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신이 제식 행위를 주관하는 사제들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그러한 형태가 나타납니다. 제식주의에서는 제사 자체가 우주 질서를 유지하는 최고 힘을 지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제사를 집행하는 제관의 위치가 오히려 신의 위치로 격상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붓다는 이와 같은 제식주의가 한창 유행하던 무렵에 등장했습니다. 인도철학의 여정에서 제식주의적 사고가 반드시 부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식주의의 발달과 더불어서 인간이 우주 운행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 관념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전까지는 '신의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서 우주가 운행되어 나간다. '라는 관념에서 '제사를 어떻게 잘 지내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인간 스스로가 우주 운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주 운행을 주관해 나갈 수 있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제식주의적인 사고는 비록 제사라고 하는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제사라는 행위가 거기에 상응하는 미래의 결과를 가져온다. '라는 믿음을 확고히 정착시켰기 때문에 행위의 인과율에 대한 믿음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 '는 것이 업 관념의 기본적인 맥락인데, 바로 이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 '는 관념은 제사 행위를 스스로 행하고 나서 거기에 맞는 제사의 결과를 받는다는 방식으로 제식주의적인 사고에 그 뿌리를 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식주의라고 하는 것은 그 나름의 한계가 아주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그것은 뭐냐? 결국에 제사라고 하는 것은 세속적인 욕구를 성취하기 위한 목적에서 수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세속적으로 무언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오로지 이 제사만 잘 지내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라고 하는 방식으로 내면에 깃들어 있는 탐욕과 욕망의 굴레에 점점 더 강하게 갇히게 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다시 한번 제식주의가 갖는 의의와 관련해서 정리해 보자면 바라문교의 제식주의는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는 나름의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면에 대한 성찰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을 욕망과 탐욕의 굴레에 더 깊숙이 말려들고 거기에 묶이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제식주의는 신성해야 할 종교적 의식, 다시 말해서 제사 자체가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식주의적 사고방식이 만연한 분위기에서 출현한 붓다는 제사 의례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사 의례가 '어떠한 형태가 되어야지 바람직한가?' 하는 방향으로 제사에 대한 혁신적인 새로운 해석을 전개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주변의 현상들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사에 대한 혁신적인 해석을 꾀했습니다.

바른 마음 가짐과 제사

붓다에 따르면 제사라고 하는 것은 바른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각자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하고 그 다음에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서 그 품행이 바르며 그다음에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웃어른을 섬기고 조상을 공양하는 경건한 마음에서 제사는 수행되어야 한다. '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자세가 전제될 때 올바른 제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더불어서 붓다는 덜 번거로우면서도 더 많은 과보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제사법을 소개합니다. 제사의 의례를 다루고 있는 『꾸따단따경(Kūṭadanta-Sutta)』이라고 하는 경전에서 붓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웃을 위해 보시하고 그다음에 계와 그다음에 선정과 지혜를 잘 닦아서 일체의 번뇌를 소멸하고 깨달음을 실현하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제사이다. '라는 언급을 합니다. 붓다는 이러한 방식으로 당시 유행하던 제사 의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제사 의례에 대한 혁신적인 해석을 꾀함으로써 올바른 종교생활의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붓다는 당시 유행했던 제식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해서 결국에는 이것이 바른 깨달음과 실천으로 연결될 때 인간에게 좋은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된다고 하는 방식으로 제사 의례를 혁신적으로 해석했다.'는 이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