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생애와 삶의 모습
붓다의 생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붓다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가? 우리는 붓다의 행적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또한 거기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는가? 붓다의 초상은 보는 이의 눈높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그려질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불교라는 종교를 창시한 교주로 부릅니다. 다른 일부에서는 해박하고 냉철한 사상가 혹은 철학자로 이해합니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초능력자 혹은 신(神)으로까지 묘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상담가, 명상가 혹은 심리치료가 등의 여러 수식어가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채로운 붓다의 행적은 어떤 특정한 명칭이나 직함으로 그의 삶 전체를 드러내는 데에 부족함을 느끼게 합니다. 초기경전을 통해 드러나는 고따마 싯닷타(Gotama-Siddhattha), 즉 붓다의 모습은 세속적인 성공이나 출세를 갈망하여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과는 기질적으로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추구했던 들뜬 희열을 버리고, 그리고 고요한 행복에 천착한 인물로서 붓다의 초상이 그려지곤 합니다. 이러한 붓다의 인격적 성향은 구도의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깨달음 이후의 전법 활동에서도 지속적으로 드러납니다. 붓다는 세속을 벗어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에 주목했고, 또한 그렇게 해서 도달되는 평안의 경지를 나누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부정하기 힘든 붓다의 어떤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됩니다.
붓다의 삶
널리 알려져 있듯이, 붓다는 샤캬족(Śākya)이라고 하는 종족의 출신으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오늘날 네팔과 인도 국경 지역에서 왕족 계급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비교적 유복한 환경 속에서 보냈고, 그리고 장래의 통치자에게 요구되었던 제반 학문 분야와 전투술 등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열여섯에 결혼을 해서 라훌라라고 하는 아들을 얻었지만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려는 열망으로 스물아홉의 나이에 출가를 단행했다고 합니다. 이후 육 년간에 걸친 치열한 구도 끝에 서른다섯에 깨달음을 얻었고, 그 이후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교화에 전념하다가 여든의 나이로 입멸(入滅)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 이상의 내용이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붓다의 삶일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로서 불교라는 종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모여서 형성된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붓다를 일컬어서 불교를 창시한 교주라고 부르는 것은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주로서의 붓다의 모습은 여느 종교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양상과 다릅니다. 그는 맹목적적인 믿음보다는 바른 이해에 기초해서 현실을 살아갈 것을 권했습니다. 또한 어떠한 권위와 전통에도 굴복하지 말라고 일렀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으로 이끌리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충고하곤 했습니다(AN. I. 188 이하).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올바른 이해에 기초해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했고, 또한 그것과 더불어서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붓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예화가 있습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었던 곳과 최초의 제자가 된 다섯 수행자들이 머물렀던 지역은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던 도중에 우빠까(Upaka)라고 하는 한 이교도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설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홀로 수행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붓다의 말에 우빠까라고 하는 이교도 수행자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Vin. I. 8). ”라고 하면서 고개를 흔들고 혀를 내두르면서 작별을 고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어렵게 재회한 다섯의 수행자들도 처음에는 그의 가르침을 완강히 거부했다고 그렇게 기술되고 있습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붓다는 그 이전에 비구들과 교분이 있었는데 그 이전에 내가 이렇게까지 한 적이 있는가(Vin. I. 10)라고 되물으면서, 그 가르침을 경청할 것을 요구할 정도로 절박하게 다섯 제자들에게 그 가르침을 펼치는 데 있어서 많은 애로를 겪었던 걸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붓다의 최초 전법여정
붓다의 최초 전법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붓다의 모습은 결코 카리스마 넘치는 교주의 그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그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사상가 혹은 철학자였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초기불교 경전에 묘사된 그의 가르침은 고도로 발달된 형이상학적 사색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세계의 기원이라든가 본질 혹은 궁극의 목적이라든가 사후 세계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사색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사변적인 견해들이 인간을 경직시키고 부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형이상학적 사고에 대한 해체를 통해서 현실의 삶을 회복하려고 하는 매우 독특한 철학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식견은 아마 2500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건너뛰는 최첨단의 비판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메마른 이지적인 지혜의 추구에 매몰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를 여느 철학자들과 동일시하는 것 또한 타당하지 않습니다. 오랜 교화활동을 통해 나타나는 붓다의 행적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상한 상담가로, 때로는 불가사의한 초능력자로, 때로는 부당한 사회 관습에 맞서는 개혁가로 묘사됩니다. 한편 최근의 심리치료계에서는 그가 가르친 명상의 치료적 효능에 주목해서 심리 치료자로서의 붓다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의 모습에서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 진보를 위해서 임종의 순간까지 방일하지 않았던 수행자로서의 면모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묻게 됩니다. 붓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또한 그를 어떠한 인물로 간주해야 할까요? 그의 삶은 그 자체로서 무아(無我), 즉 고정된 자아가 없다고 하는 가르침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엄숙하고 진지한 삶을 일관했지만 스스로를 특정한 모습으로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그의 삶은 마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행적은 '나' 혹은 '나의 것'에 붙잡혀 살아가는 대다수 범부들과 대조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붓다가 스스로 어떠한 위치나 명예에 안주했더라면 그의 이름에는 특정한 신분이나 지위가 따라붙었을 겁니다. '깨달은 이'라고 하는 붓다(Buddha)의 별칭으로 바가반(bhagavant, 世尊), 즉 '귀하신 분', 아라한(arahant, 阿羅漢), 즉 '공양받을 만한 분', 혹은 따타가따(tathāgata, 如來) '그와 같이 오신 분' 등의 별칭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칭들은 어떠한 세속적 가치에도 집착하지 않고 무아의 삶을 실현해 나간 붓다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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