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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 불교 역사, 불교 개념, 불교 공부

붓다 가르침의 순서

붓다 가르침의 순서

붓다 가르침의 순서
붓다 가르침의 순서

'붓다가 가르침을 펼칠 때 어떠한 순서를 따라서 그 가르침을 펼쳤는가?'라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초기 불교의 교설에서 가장 중요한 교설을 우리는 '사성제'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붓다는 이 사성제의 가르침(四聖諦)을 처음 만난 사람한테 곧바로 말했던 건 아닙니다. 붓다는 일정한 순서에 따라서 가르침을 펼친 후에 그 사람의 마음이 충분히 정화되었고, 그래서 사성제의 가르침을 흡수할 만한 자질이 갖추어졌다싶을 때 사성제의 가르침, 다시 말해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의 본래 영역에 해당하는 그러한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의 순서상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보시에 대한 가르침(施論)입니다.

보시에 대한 가르침

붓다는 보시,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베풀 수 있는 그러한 넉넉한 마음의 태도를 갖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할 그런 덕목이라고 파악을 했습니다. 붓다에 따르면 '우리는 보시를 통해 인색과 탐욕에서 벗어나게 된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보시에 대한 가르침이 어느 정도 그 사람에게 익혀졌고 충분히 이 사람이 보시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탐욕과 인색에서 벗어났다는 판단이 들 때 그 다음 순서로 계율(戒律)의 준수를 권장했습니다. 이 계율의 준수는 재가자와 출가자에 따라서 종류는 다양하게 갈라지지만 자신에게 맞는 계율의 실천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바르고 청정한 삶의 길을 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배려를 했습니다.

천상세계에 대한 가르침

더불어서 이 보시의 가르침 그 다음에 지계의 가르침(戒論)이 설해지고 난 이후에는 천상세계에 대한 가르침(生天論)을 펼쳤습니다. 천상세계는 죽고 난 이후 세계입니다. 따라서 이게 실증적으로 우리가 증명할 수는 없지만 '보시의 가르침과 그다음에 지계의 가르침이 원만히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라는 취지로 천상세계에 태어난다고 하는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보시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붓다는 가진 것은 적지만 베풀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갖추게 되면 많은 것을 정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조금만 있어도 믿음으로 보시하면 타인의 이익으로 인한 즐거움까지 우리가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굉장히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이익에 대해서 즐거워하는 마음을 갖기가 좀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타인이 얻는 그러한 기쁨을 통해서 나까지 기뻐할 수 있다면 이건 온 세상에서 타인의 기쁨을 볼 때마다 곧 그것이 나의 기쁨이기 때문에 진실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보시의 마음, 다시 말해서 베풀 줄 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붓다는 가르칩니다. 더불어서 붓다는 보시가 단순히 재물을 베푼다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붓다는 재물로 이루어지는 보시(財布施)와 그다음에 법으로서 이루어지는 보시(法布施) 이 두 가지가 보시의 종류로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붓다는 법으로서 이루어진 보시, 다시 말해서 진리를 함께 나눔으로써 얻는 그러한 보시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한 세계로 함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된다. 해서 재물에 의한 보시보다는 법보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모든 보시가 주어질 때는 '그 보시를 행하기 전의 마음 상태와 진행할 때의 마음 상태 그리고 그 보시를 베풀고 났을 때의 마음이 과연 행복한가?'라고 하는 것을 돌이켜 보도록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베풀고 나서도 스스로 즐거운 마음 혹은 흐뭇한 마음이 있을 경우에는 올바른 보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보시는 개선되어야 할 보시다. '라는 언급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계율에 대한 가르침

다음으로 계율로 넘어가겠습니다. 붓다의 제자로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을 우리는 계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계(戒, sīla)와 율(律, vinaya)의 복합언데요. 계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맹세하여 지키는 규칙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것을 어겼을 때 받아야 할 범칙 규정이 없습니다. 반면에 율은 불교라고 하는 단체를 이끌기 위해서 제정된 그러한 타율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을 어겼을 때는 일정한 벌칙이 뒤따르는 게 일반적인 언명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계와 율은 각자 여건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준수해야 될 실천적 덕목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재가자가 지켜야 할 일반적인 다섯 가지 계율은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혼미하게 하는 그런 음료나 약품을 취하지 말라. ' 등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정신적으로 올바른 길을 나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되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혼란하면 정신적인 성취와 진전을 이루어 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은 형식적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사항이지만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그러한 태도와 노력을 의미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경전에서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이것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금하지는 않았지만 만일 이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그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을 범해서는 안 된다. ' 이것은 형식적인 계율의 준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이 처한 삶의 요건 속에서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정확히 수행하려고 하는 바로 거기에 참된 계율의 정신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계율과 보시의 가르침이 전제됐을 때 우리는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는 믿음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천상세계 혹은 내 세는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가설적인 차원의 세계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천상세계의 존재 여부를 현재의 삶에서 증명해 보일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세에 대한 올바른 사고는 현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죽고 난 이후를 대비하는 사람은 현재의 삶을 함부로 살지 않는다. ' 천상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죽고 난 이후 세계에까지를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출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에게 내세는 결코 가설적인 차원의 세계가 아니며 바로 현실의 삶 자체가 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보시에 대한 가르침, 계율에 대한 가르침, 더불어서 생천에 관한 가르침, 다시 말해서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았습니다. 붓다는 반드시 이 세 가지 가르침을 설파한 연후에 그 가르침을 충분히 소화해서 그 마음이 청정해졌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한해서 사성제의 가르침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