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의 쾌락주의 개념과 특징
쾌락주의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쾌락주의 역시 부처님이 생존해 있던 당시에 유행했던 인도 철학사의 한 사상적 경향을 일컫는 말입니다.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즐거운 느낌을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쾌락주의란 바로 이러한 즐거운 느낌의 추구를 목적으로 삼는 그러한 사상적 경향을 말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쾌락주의의 개념과 특징
쾌락주의에서는 쾌락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더불어서 도덕의 기준으로까지 삼았습니다. 불교가 출현할 당시 일부 사상가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잘 먹고 잘 놀면서 쾌락을 향유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 믿었습니다. 그 외의 나머지 사후세계에 대한 어떤 믿음이라든가 더 좋은 미래의 쾌락을 위해서 현실의 쾌락을 놓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기존의 기성 종교들에 대해서 배타적이고 반항적인 사고를 고취시켰습니다. 쾌락주의에서는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일체의 지식은 허구로 봅니다. 또한 세상을 구성하는 유일한 실재는 물질이며 바로 그 물질이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의식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사실 이러한 쾌락주의는 우리 21세기를 살아가는 대다수 현대인들의 사고방식과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쾌락주의에서는 '인간의 의식은 육체의 조화에 의해서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육체가 소멸되고 나면 우리 의식도 역시 육체와 더불어서 소멸되는 까닭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생각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의 생이 존속해 있는 바로 그 한계 내에서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세계를 벗어난 문제에 대한 어떤 그 믿음이라든가 혹은 신적 존재에 대한 생각 등은 전혀 근거를 지니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쾌락주의자들은 죽음을 절대적인 소멸로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이전에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려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쾌락주의적 입장에 따르면 '고행을 하거나 금욕을 하는 것 또한 불필요한 자기 학대이자 망상의 소치이다.'라고 바라보았습니다. 더불어서 쾌락주의자는 '재물을 모으는 것 또한 재물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을 얼마만큼 즐겁게 사용하느냐?' 다시 말해서 '쾌락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재물을 모아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고통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가져오는 것이 선이고 그다음에 즐거움보다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하는 행위는 악으로 규정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면 가급적 모든 고통을 피하거나 혹은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최대한 쾌락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쾌락주의의 구체화
쾌락주의는 당시 인도 사회를 지배했던 바라문교에 대한 저항의 분위기 속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불생불멸의 아트만이라고 하는 존재가 있다. ' 혹은 '죽고 나서 어떤 천상의 세계가 있다.'라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부분에 대한 교리와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쾌락주의에서는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바라문교의 교리들은 바라문 계급이 대중을 현혹시키고 자신들의 어떤 종교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서 꾸며낸 거짓이다.'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이러한 쾌락주의의 시각은 당시 사회적인 약자였던 비바 라문 계급 다시 말해서 바라문 사제 계급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실상을 공정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합니다. 더불어서 일부 세련된 쾌락주의자들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했고 또한 쾌락을 이웃과 나눌 때 그 쾌락의 양이 증가한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질적으로 고양된 쾌락주의에 대해서는 우리가 함부로 '이것이 잘못됐다. '라고 비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쾌락주의에 대해서 무작정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붓다 당시 교양 있는 쾌락주의의 신봉자들은 자제력과 분별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또한 세련된 취미와 순수한 우정 따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당시 인도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진전됨과 더불어서 출현한 자유분방한 진보적 지식인들이었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쾌락주의는 불교의 출현에도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쾌락주의자들은 바라문교의 계급주의에 맞서서 모든 인간의 평등함을 일깨웠고 바로 이 부분은 바라문교의 계급제도와 타협 없는 태도로 맞섰던 붓다의 가르침과 일정 부분 그 궤도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서 경험세계를 넘어선 궁극의 실재에 대한 부정 역시 형이상학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의 무아설(無我設)에 대해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붓다의 쾌락주의
붓다의 가르침이 무조건적으로 쾌락주의를 찬동하는 형식으로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붓다는 '쾌락주의는 경험적, 감각적 경험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자체적인 교리적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을 명확하게 간파하게 됐습니다. 예컨대 쾌락주의에서는 '경험 가능한 지식만이 타당하다. '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 '경험 가능한 지식만이 타당하다. '라고 하는 그 명제 자체는 우리가 경험 가능한 모든 것을 다 경험해보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따라서 붓다는 경험 가능한 지식만이 타당하다고 내세우는 쾌락주의자들의 명제 자체가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비판적인 지적을 했습니다. 또한 붓다는 쾌락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권태와 허무 감정을 낳을 뿐이고 더욱 강력한 새로운 쾌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따라서 붓다는 쾌락에 몰두하는 것을 천하고 범속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쾌락의 추구가 완전한 깨달음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쾌락주의도 부정하고 또한 그 반대 축에서 우리 인간을 쓸데없이 이 고행의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고행주 의도 부정하는 상태에서 다시 말해서 쾌락주의에도 빠지지 않고 고행 주의에도 빠지지 않는 방식의 어떤 중도(中道)적 실천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 나아갈 것을 가르쳤습니다. 오늘은 붓다 당시 유행했던 쾌락주의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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