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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 불교 역사, 불교 개념, 불교 공부

초기불교의 단멸론

초기불교의 단멸론

초기불교의 단멸론
초기불교의 단멸론

단멸론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단멸론(斷滅論, ucchedavād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하여 없어진다는 그러한 주장을 가리킵니다. 특히 초기불교에서 문제시하는 단멸론은 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하고서 업(業)에 의한 지음과 받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지칭합니다. 단멸론은 '무아(無我)' 즉 자아가 없다는 붓다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켜서 불교적 가르침으로 오인이 되는 그러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죽고 난 이후의 삶 혹은 내세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착한 행위를 하면 천상에 태어나게 되고 악한 행위를 하면 지옥의 세계가 기다린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어떠한 경우라도 죽고 나면 그대로 소멸해서 없어진다는 그러한 방식의 가르침을 펼치지는 않았습니다.

초기불교와 단멸론 비교

일부 학자들은 초기불교가 '무아'를 가르쳤다고 하는 그러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초기불교를 단멸론과 흡사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무아'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개인 존재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그런 의미가 됩니다. 이러한 '무아' 해석은 고착화된 자아(attan) 혹은 영혼 관념을 극복하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행위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상쇄시키는 그러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순간의 '나'라고 하는 존재가 정말로 이 순간에서 그쳐버린다면 과연 누가 미래의 '나'를 위해서 고민하겠는가. 죽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버리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할 그런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붓다는 불변적 실체로서의 자아라든가 영혼에 대해서는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경험적 자아 혹은 영혼에 대해서는 부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오온으로 이루어진 경험적 자아가 사후의 세계에서도 지속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컨대 '자나와 사바경(Janavasabha-Suttanta)'이라고 하는 경전에서 붓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전생(轉生) 다시 말해서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하는 전생에 관해서 매우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DN. II. 201 이하). 그리고 어떠한 사람은 착한 행위를 많이 해서 이러저러한 천상의 세계에 태어났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악한 행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지옥에 태어났다고 묘사합니다. 한편 궁극의 경지를 성취한 어떤 최고의 수행자 즉 아라한의 경우는 윤회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서 머문다고 붓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일회적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책임의 문제는 죽음 이후 세계까지 연장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 개인에게 도덕적 주체로서 살아가게 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이 초기불교 경전에 근거하는 한 붓다는 내세와 윤회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윤회를 멈춘 사후의 아라한에 대해서도 인간의 생각과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 존재라고 묘사할 뿐, 그러한 아라한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그러한 따위의 단정적인 어투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초기불교를 단멸론으로 이해하게 되면 니까야 문헌에 묘사되는 방대한 분량의 윤회와 전생에 관련한 가르침을 위배하게 되는 그러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든 것이 단절돼서 소멸한다. ”라고 하는 주장은 일종의 형이상학(形而上學)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장에 대해서 붓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거룩한 침묵(無記, 無記, avyākata) 즉 무기로서 대처했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 단정적인 태도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입증될 수 없는 생각들은 불필요한 논쟁의 빌미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단멸론자들은 절대적인 소멸, 죽고 나서 절대적으로 소멸한다고 하는 주장을 펼칩니다. 붓다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모든 것이 영원하다. ”혹은 “죽고 나서 우리의 영혼이 계속된다. ”라고 하는 정반대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타당성을 지닐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왜냐? 둘 다 경험을 벗어난 관념의 산물이고 입증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영원하다. ”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단멸한다. ” 즉 상주론과 마찬가지로 단멸론에 대해서도 삿된 견해(邪見)로 간주합니다.

단멸론의 내용

단멸론은 육신만을 절대시하고 육신의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그렇게 봅니다. 이러한 사고는 전통적인 서구적 영혼 관념에 거부감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상당한 매력을 발휘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를 조장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도덕의 부정과 쾌락주의를 부추길 위험성도 있습니다. 사실 현대의 물질문명에는 이와 같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의 요소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애써 부정하려는 단멸론적 사고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바른 지혜를 갖춘 사람은 사물이 계속된다고 하는 사실을 보면서 “이것이 없어진다. ” 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물이 일정기간 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져 간다. 혹은 소멸된다고 하는 사실을 보면서 “모든 존재가 영원히 계속된다.”라고 이야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붓다는 이러한 입장에 서서 있음과 없음이라고 하는 단정적 논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붓다는 이렇게 언급합니다. “존재한다는 주장도 하나의 극단이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하나의 극단이다.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가르침을 드러낸다(SN. II. 17 등). ” 붓다는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순간에 사라져 없어지지도 않는 우리 존재의 아이러니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